[심상희 칼럼] 제 11화, 머리카락은 사랑이다
[심상희 칼럼] 제 11화, 머리카락은 사랑이다
  • 이현주 기자
  • 승인 2022.12.15 13: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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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를 좋아하시나요. 우연히 스쳐 지나가는 대사에 눈길을 빼앗겨 보게 된 드라마가 있습니다. 제 마음을 빼앗아간 대사는 여배우가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 넋두리처럼 이야기하는 장면에 나오는 대사입니다.  

“머리만 밀면 해방될 것 같아요. 제가 머리를 민다는 건 그냥 동물이기로 하는 거예요. 이름 없는 동물. 그렇게 살아도 될 것 같아요. 

여태 죽을 기를 쓰고 산다고 살았어도 얻어진 것도 없고, 왜 그렇게 살았나 몰라요.

그냥 머리 밀면, 잘나 보이고 싶은 욕망, 남자에 대한 욕망, 다 한 방에 해결될 것 같아요. 그래서 결심했죠. 올 겨울엔 아무나 사랑하든, 머리를 밀든, 둘 중 하나는 하자. 여기서 결정 보지 못하면 평생 머리칼 건사하면서 시달리다 죽을 거다. 응”

어떤 드라마인지 아시겠어요. ‘나의 해방일지’에 나온 대사입니다. 

이 대사가 공감이 가는 건 저 만의 일은 아닐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냥 머리 밀면, 잘나 보이고 싶은 욕망, 남자에 대한 욕망, 다 한 방에 해결될 것 같아요.”

머리칼이 무슨 사회적 성공을 상징하는 것도 아니고, 감정에 영향을 주는 부분도 아닌데 무슨 상관이 있다고 잘나 보이고 싶은 욕망이 머리카락을 밀면 해결될 수 있을까 싶어요. 

“그래서 결심했죠. 올 겨울엔 아무나 사랑하든 머리를 밀든, 둘 중 하나는 하자." 

머리카락이 사랑과 무슨 상관이 있길래, ‘머리카락을 밀든 사랑을 하던 둘 중 하나는 하자’는 말이 마음에 남는 걸까요. 그리고 이 말이 이상하지 않고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걸까요. 이 말은 머리카락과 사랑이 동등한 가치와 의미를 지니고 있어야 가능한 말입니다. 우리가 ‘사과를 먹을까 배를 먹을까?’ 선택을 하는 것처럼 사과와 배의 가치가 같은 것을 놓고 고민하지 전혀 상관없는 두 가지를 놓고 고민을 하지는 않으니까요. ‘사과를 먹을까, 자동차를 살까?’ 이런 고민은 이상하잖아요. 연인과 헤어지면 머리카락의 잘못으로 헤어진 것도 아닌데, 단발하거나 빡빡 밀기도 하는 걸 보면, 분명 머리카락과 사랑은 모종의 관계가 있는 게 분명한 것 같습니다. 

이 드라마의 대사를 곱씹어보면 머리카락이 사랑을 의미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랑뿐만 아니라 자신이 하고 싶은 꿈을 상징하고, 그 꿈이 이루어지고, 좌절하는 것에 따라 머리카락의 운명이 결정되고 있습니다. 

머리카락은 나날이 자라나기 때문에 오래지 않아 원하는 길이만큼 기를 수 있는데요. 왜 이렇게 머리카락을 괴롭히는 걸까요. 신체 중에 소중하지 않은 곳은 없겠지만 하루에 약 50-100개 사이 빠지는 것이 머리카락입니다. 근육도 없어서 나의 의지로 움직일 수도 없습니다. 어찌 보면 아무런 역할을 못 하고 중요하지 않은 것 같은데, 사랑을 하지 못하면 머리카락을 잘라야 마음이 진정된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 말이 논리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게 다가온다는 거죠. 그러니까 인기 있는 드라마의 대사로 쓰일 수 있는 거죠.

머리카락이라고 읽고 쓰지만, 사랑이라고 느끼고 행동하는 것이 머리카락입니다.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내면서 다음 생의 안녕을 위해 머리카락으로 신발을 만들었던 여인의 머리카락은 사랑이었던 거죠. 

영화 배우 오드리 헵번(Audrey Hepburn) 이야기가 나오면 ‘티파니에서 아침을(Breakfast at Tiffany's)’에서 티파니 보석상 쇼윈도우 앞에서 커피를 들고 크루아상을 먹는 모습과 창가에 앉아서 기타를 치며 ‘문 리버(Moon River)’를 노래하는 장면이 생각이 납니다. 오드리 헵번은 머리카락에 대해서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For beautiful hair, let a child run his or her fingers through it once a day.’— Audrey Hepburn

아름다운 머리카락을 위해서, 소년, 소녀 아이들에게 손가락으로 하루에 한 번 쓰다듬도록 부탁하자. 

어린 아이들이 나의 머리카락을 쓰다름어준다면 어떤 느낌이 들까요? 오드리 헵번은 이 느낌을 알기 때문에 사랑스러운 아들에게 이 말을 전했을 겁니다.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그녀에게 말년에 소중했던 것은 어린아이들의 순수함과 순백의 아름다움이지 않았을까요. 그리고 어린아이의 아름다운 마음과 따뜻한 손길을, 머리카락을 쓰다듬어 주는 그 손길을 통해서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오드리 헵번은 알고 있었던 것이라 생각됩니다.  

이처럼 우리 신체 중에서 머리카락처럼 상징적인 의미와 다양한 감정들을 품고 있는 것은 없는 것 같습니다. 사랑하는 연인들 사이에서 머리카락을 쓰다듬는 것은 사랑하는 사이에서만 가능한 행동으로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그 이상의 특별한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미용사는 머리카락의 패션을 디자인하면서 동시에 마음과 사랑을 디자인하는 직업인 것 같습니다. 일을 통해서 사랑을 전해줄 수 있는 직업은 그 어디에도 없는 것 같습니다. 

사랑하는 이가 있으신가요? 너무나 간단하고 단순한 일이지만, 그동안 하지 못했던 일을 도전해보는 용기를 내고 싶은 날입니다. 오늘 하루는 소중한 사람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어 주거나 빗질을 해 주면서 사랑하는 마음을 전달하면 어떨까요? 

헤어 칼럼니스트 심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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