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상희 칼럼] 제 12화, 체두관(剃頭官)-머리카락을 자르는 관리(官吏)
[심상희 칼럼] 제 12화, 체두관(剃頭官)-머리카락을 자르는 관리(官吏)
  • 이현주 기자
  • 승인 2023.01.04 21: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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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두관(剃頭官)이라고 들어보셨나요.

머리털 깎을 ‘체(剃)’, 머리 ‘두(頭)’, 관리 ‘관(官)’으로 문자 그대로 의미는 ‘머리카락을 자르는 관리’가 됩니다.

머리카락을 자르는 일을 공무원이 했다는 것이 믿어지시나요?

그런데 머리를 잘라주는 행정관리가 있었다는 게 이상하죠. 

‘내 머리는 자를 수 있을지언정 머리털은 자를 수 없다.’라는 최익현(崔益鉉)의 말과 관련 있습니다. 최익현의 우국 애민의 정신과 위정척사사상은 항일 의병운동과 일제강점기의 민족운동과 독립운동에 많은 영향을 끼친 인물입니다. 

고종은 1895년 12월 10일에 단발령(斷髮令)을 발표합니다. 단발령은 성년 남자의 상투를 자르고 서양식 머리를 하라는 칙령으로, 서양인, 일본인들의 단발에 건의로 시작되었습니다. 

그래서 고종과 황태자 순종은 머리를 깎고, 내무부 대신 유길준은 고시를 내려서 관리들에게 칼과 가위를 가지고 도성 거리나 성문에서 백성들의 머리를 깎게 하고 직접 지도와 감독을 했는데요. 이때 머리를 깎으러 다닌 관리들이 바로 ‘체두관(剃頭官)’입니다. 

그런데 단발령은 ‘신체발부 수지부모(身體髮膚 受之父母)’라는 성리학자들의 격렬한 반발로 1897년(건양 2년)에 일단 철회됩니다. 

1900년(광무 4년) 이후 광무개혁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다시 부활해서 전국적으로 단행됩니다.

하지만 단발에 대다수의 국민들이 호응하지 않아서 ‘군수삭발령’이라는 새로운 규정을 공포하기에 이릅니다. 그러나 결국 성공하지 못하고 이 일을 추진했던 김홍집 내각은 대중적 지지기반을 상실하고 실각하게 됩니다.

단발의 명목상 이유는 ‘위생에 이롭고 작업에 편리하기 때문’이었는데요. 왜 사대부와 유학자들은 ‘목을 잘라 목숨’을 잃어도 ‘머리카락’은 자를 수 없다고 단발령에 완강하게 반대를 했을까요? 정말로 ‘머리카락’이 그만큼 소중해서일까요? 

‘내 머리는 자를 수 있을지언정 머리털은 자를 수 없다(오두가단 차발불가단 吾頭可斷此髮不可斷).’는 말은 다음 문장에서 나온 이야기입니다. 

身體髮膚 신체발부

受之父母 수지부모 

不敢毁傷 불감훼상 

孝之始也 효지시야

- 효경(孝經) -

사람의 신체와 터럭과 살갗은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것입니다. 감히 손상할 수 없는 것으로, 이것이 ‘효(孝)’의 시작입니다. 

지금 생각해 상투를 자르고 간결하게 하는 것이 좋아 보이는데요. 왜 실패를 했을까요? 왜 많은 성리학자 출신 관리들이 단발령을 거부하고 사직서를 내고 낙향을 했을까요? 그리고 왜 단발령이 을미의병이 봉기하는 단초가 되었을까요? 

효경(孝經)의 글을 다시 보면 ‘신체발부 수지부모 불감훼상(身體髮膚 受之父母 不敢毁傷)’ 입니다.

‘우리의 신체와 머리카락과 피부는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것으로 손상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머리카락’만 상처(傷處)를 조심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신체발부는 단순히 머리카락을 의미하는 게 몸 전체와 머리카락과 피부 하나까지 다치지 않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피부가 긁히거나 칼에 베인 상처나 불에 데인 화상과 같은 피부(皮膚)의 손상도 있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만약에 자르는 것이 손상과 같은 의미로 이해한다면, 손톱이나 발톱도 자르면 안 되는 것이 됩니다. 왜냐하면 이런 논리라면 이것도 손상에 해당되는 것이니까요.

그리고 상투를 틀 때 가운데 머리를 잘라내서 상투를 묶었습니다. 이렇게 하는 것을 ‘배코(백호)’ 친다고 하는데요. 상투를 틀기 위해서 머리를 다듬어야 하고, 이때 머리카락 일부를 자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말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목숨을 버려도 되지만 ‘머리카락’은 자를 수 없다는 뜻이 되고 머리카락이 목숨보다 귀중하게 됩니다. 말이 안 되는 건 몸에 상처 하나 없이 다치지 않게 조심하라고 했는데, 목숨은 버려도 된다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 

발걸음 하나하나 움직일 때 혹시 개미라도 밟을까 조심하는 것처럼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삶을 살라고 ‘효경’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목을 자를지언정 머리카락은 자를 수 없다는 건 말 그 자체로 말도 안 되는 소리가 됩니다. 머리카락 하나 손상 입지 않게 조심하는 것인데 목숨이 달린 목을 자르겠다고 했으니까요. 

단발령을 공포한 시기는 친일 내각에 의해 일제 강탈이 시작되던 시절입니다. 따라서 일제 식민주의 정책에 반기를 들은 것으로, 반기의 상징으로 머리카락을 들어서 이야기 한 것입니다. 

100년이 훨씬 지난 지금까지도 이 말이 살아 숨 쉬는 것을 보면 결연한 의지를 보이기 위해서 극적인 효과를 만들어내는 데는 성공했습니다. 

우리 민족에게 머리카락은 목숨과 비견되는 것이었습니다. 이처럼 머리카락은 외모를 가꾸는 의미만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가짐을 외부로 표현하는 수단으로 사용되었습니다. 

몸이 아프면 입맛도 없고 만사가 귀찮아지며 진취적으로 무엇을 할 수가 없는데요. 살면서 몸과 마음이 아프지 않고 피부 한 곳도 흉터가 없고 털끝 하나 다치지 않는다면 이보다 더 건강할 수 없을 것입니다. 

건강의 척도가 여러 가지가 있지만, 헤어 디자이너 입장에서 머리카락은 건강 상태를 말해주는 지표가 됩니다.

머리카락은 미용의 목적도 있지만 이처럼 다양한 다른 의미를 품고 있는 것이 머리카락입니다. 미용인으로서 알아갈수록 알 수 없는 것이 머리카락인 것 같습니다. 

 

헤어 칼럼니스트

심상희

 

<참고 자료>

백성의 상투를 자르라던 단발령. https://ncms.nculture.org/righteous-army/story/4085

사료로 본 한국사. 단발령. http://contents.history.go.kr/mobile/hm/view.do?levelId=hm_119_0050&period=&theme=&tabId=e

한국민속대백과사전. 단발령(斷髮令). https://folkency.nfm.go.kr/kr/topic/detail/6929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단발령(斷髮令).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135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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