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상희 칼럼] 제 13화, 백호치다, 배코치다 그리고 백회치다
[심상희 칼럼] 제 13화, 백호치다, 배코치다 그리고 백회치다
  • 이현주 기자
  • 승인 2023.01.04 21: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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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호치다’를 보고 헤어 디자이너가 뜬금없이 ‘흰 호랑이’ 잡으러 가는 줄 알고 놀라셨나요?

아래 사진은 ‘단발령’으로 검색하면 볼 수 있는 사진입니다.

이 사진의 최초 출처는 어디인지 알 수가 없는데요. 단발령이 발표된 후 체두관이 거리를 돌아다니면서 머리를 자르던 모습으로 소개를 합니다. 

이번에는 사진이 아닌 그림을 보여드릴게요.

이 그림은 기산(箕山) 김준근(金俊根)의 풍속화입니다. 기산의 생애와 이력에 대한 기록은 거의 남아 있지 않습니다.

다만, 19세기 말 부산과 원산 등의 개항장에서 풍속화를 그린 화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동안 화풍에 담긴 의미를 알아봐 주는 인물이 없어서 저평가되는 비운의 작가입니다. 

왼쪽 그림을 보면 ‘단발한모양’으로 화제(畫題), 그림의 제목이 있습니다. 

오른쪽 그림은 ‘상투밋치는모양’으로 상투의 아랫부분을 쳐서 자르는 그림입니다. 

‘단발한모양’은 단발령에 따라 체두관이 상투를 자르는 모습을 그린 그림입니다. 갓을 쓴 선비가 가위를 들고 머리를 자르고 있고, 그 옆에는 잘린 머리를 거울을 통해 보고 있는데요. 밤 털처럼 뽀송뽀송한 짧은 머리를 볼 수 있습니다. 

오른쪽 그림 ‘상투밋치는모양’은 상투를 묶는 부분의 아래를 자르는 모습입니다. 이발사처럼 보이는 사람이 손에는 칼을 들고 있습니다. 손님처럼 보이는 이는 곰방대를 물고 사색을 즐기는 표정인데요. 아마도 애연가인 듯싶습니다. 

머리를 잘라주는 사람의 복장과 머리카락을 자르는 도구를 보면, 사진의 모습은 체두관이 단발하는 모양이 아니라 상투의 밑을 자르는 모양과 유사하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체두관은 신분이 관리이기 때문에 복장으로 갓을 쓰고 있고, 가위를 들고 머리를 자르고 있습니다. 반면, 상투 밑을 치는 이는 곰방대를 물고 손에는 칼을 가지고 면도하듯이 머리를 밀고 있습니다. 

기산의 그림에는 상투 밑을 자르고 시간이 지난 후의 모습을 알 수 있는 내용이 있습니다. 오른쪽 그림을 보면 상투를 풀었을 때 모습을 볼 수 있는데요.

상투를 묶는 정수리 부분의 머리카락이 짧게 자라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정수리를 뺀 나머지 머리카락은 상투를 틀 수 있게 긴 것과 대조적인 모습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상투는 혼자서 트는 것이 쉽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옆에서 상투를 틀어주고 있는 그림도 있습니다. 

사진과 기산의 그림을 비교해서 보면, 단발령의 모습으로 알려진 사진은 ‘상투 밑을 치는 모양’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럼 왜 상투 밑을 잘라야 했을까요? 

상투는 조선 시대 헤어 스타일입니다. 유행하는 남성 헤어 스타일이 상투였던 거죠.

그래서 조선 시대 성인 남성들은 상투를 틀어야 했는데요. 상투를 묶는 자리에 머리카락이 길고 풍성할 경우 이쁘게 상투를 틀 수 없습니다.

무겁기도 하고 여름에는 날씨가 더워서 불편한 부분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정수리 부분의 머리카락을 밀어서 상투를 묶을 수 있는 빈 공간을 만들면, 상투를 이쁘게 틀 수 있었기 때문에 그 부분의 머리카락을 다듬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정수리 부분의 머리카락을 자르고 면도해서 민머리처럼 만드는 것을 ‘배코친다’고 합니다. 그런데 왜 이런 행동을 ‘배코를 친다’로 했을까요? 

‘배코치다’는 말 이외에도 ‘백호치다’로 쓰기로 하는데요. 그렇다면 어떤 게 정확한 것일까요?

정답부터 이야기하자면 ‘배코치다’가 국어사전에 있지만, 어원(語原)을 보면 이 말 역시 바른 단어는 아닙니다. 

우리 몸에는 혈(血)자리가 있습니다. 몸의 기운을 통하게 하고 아픈 곳이 있을 때 치료의 목적으로 침(鍼)을 놓는데 사용되는 자리인데요.

일 년이 365일 인 것처럼, 혈자리도 대략 365개 정도 있습니다. 정수리는 혈자리 중의 하나인데요. 정수리의 혈자리 이름이 ‘백회(百會)’입니다. 

상투를 틀기 위해 머리카락을 미는 곳이 바로 정수리, 백회(百會)입니다. 백회를 중심으로 주변을 동그랗게 머리카락을 돌려 깍은 후, 면도로 빡빡 밀어서 깍는 거죠.

그래서 그림을 자세히 보면, 머리 깎는 도구가 ‘가위’가 아니라 ‘칼’인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전에 ‘배코’는 상투를 앉히는 자리로 나와 있는데요. ‘배코’는 ‘배코(白會)’로고 적혀있습니다. 그러니까, ‘배코’가 ‘백회(百會)인 것이죠.  

‘ㄱ’ 받침과 뒤에 첫소리 자음에 ‘ㅎ’이 연달아 붙어 있어서 발음이 쉽지 않습니다.

백회를 빨리 발음해 보면, ‘백호’ 또는 ‘배코’로 발음을 하게 됩니다. ‘백회’로 발음을 한다 해도, ‘백회’라는 단어를 모르는 경우, ‘백호’ 또는 ‘배코’로 들리기도 합니다.

이런 이유로 가장 간편한 형태인 ‘배코치다’가 상투를 앉히는 자리의 머리카락을 잘라내는 것으로 전해져 내려온 것이죠.

정확히 표현하자면, ‘백회(百會)치다’가 맞는 표현이지만, 사전에는 ‘배코치다’로 되어 있으니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그럴 일은 없겠지만 ‘배코’와 ‘백호’의 논쟁이 있게 되면 ‘백회(百會)’에서 나왔다는 것을 알려줄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 

더운 날씨입니다. 선조들이 ‘백회’치듯이 여름철 헤어 스타일로 바꿔보는 건 어떨까요?  

 

헤어 칼럼니스트

심상희

 

<참고 자료 >

신기철ㆍ신한철 편저. 새 우리말 큰사전. 삼성출판사.

표준국어대사전. https://ko.dict.naver.com/#/entry/koko/165d27a5e8b94a66b16e7560aa763166

한국민속대백과사전. https://folkency.nfm.go.kr/kr/topic/detail/70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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