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상희 칼럼] 제 19화, 미용인 선구자 오엽주와 심명숙
[심상희 칼럼] 제 19화, 미용인 선구자 오엽주와 심명숙
  • 이현주 기자
  • 승인 2023.04.14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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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엽주(吳葉舟)는 우리나라 최초로 서구적인 형태의 미용실을 개업한 여성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1905년 황해도 사리원 출생으로 평양의 남산보통학교와 서문여자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926년 경성 여자미용원에서 6개월 과정을 수료합니다. 1927년에는 일본으로 건너가 약 3년 동안 영화배우로 활동하고 1933년 3월 16일 종로 화신백화점 2층에 ‘화신 미용부’라는 미용실을 개업합니다. 주로 머리는 일본인 미용사가 담당하고 오엽주는 화장을 담당했다고 합니다. 

당시 충무로에는 일본인이 경영하는 미용실과 조선인이 경영하는 미용실도 있었는데요. 대부분 화장품 회사가 자본을 대고 미용사를 고용하는 형태였다고 합니다. 그녀가 개업한 미용실은 마사지실과 머리를 감는 세발실(洗髮室)이 있었고 고데, 마사지, 매니큐어, 머리 감기 등을 주로 했습니다. 당시에는 머리를 자주 감기도 어려웠던 시절이라 비듬을 털고 머리를 감는 손님이 많았다고 합니다. 

1935년 1월 화신백화점에 불이 나서 영업을 못 하게 되자 일본으로 미용 연수를 떠납니다. 한국으로 돌아온 후 1935년 12월, 종로 영보빌딩 4층에 ‘엽주 미용실’을 개업합니다. 일본 마쓰다(松田) 화장품 회사의 자본을 끌어와 퍼머 기계를 비롯해 최첨단 시설을 갖춥니다. 당시 퍼머는 ‘머리를 전기로 지진다’라는 뜻에서 ‘전발(電髮)’이라고 불렀습니다. 

‘엽주 미용실’은 퍼머, 세팅, 매니큐어, 신부 화장 등을 했는데요. 가스 난방시설로 더운물이 항상 나오고 드라이어가 있는 최신 시설로 특수층에 속하는 여성들이 이곳을 주로 애용했습니다. 이때, 단골손님은 영화배우 복혜숙, 김연실, 신일선 등이었는데요. VIP 고객의 경우 출장 서비스도 했다고 합니다. 

문헌에 따라서는 우리나라의 첫 퍼머가 도입된 시기를 1937년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오엽주가 다시 미용실을 개업하면서 퍼머 기계를 도입했다면,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퍼머가 된 시기는 1935년으로 볼 수 있습니다. 

오엽주는 미용실을 개업하기 이전부터 유명한 인물이었던 것 같습니다. 미용실을 개업하기 7년 전인 1926년 6월 25일 자 동아일보에는 경성 미용학원을 졸업하는 오엽주의 인터뷰 기사가 있습니다. 

기사 내용에는 개인적인 포부뿐만 아니라 당시 미용 기술의 분야를 알 수 있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오엽주는 미용 관련 기술을 첫째, 미안술(美顔術)로 얼굴을 아름답게 하는 것, 둘째, 미조술(美爪術)로 손톱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 셋째, 미발술(美髮術)로 머리를 아름답게 하는 것이라고 소개합니다. 오늘날 피부 미용, 네일 아트, 헤어 미용으로 경성 미용학원에서는 이 모든 부분을 가르친 것으로 보입니다. 

이 기사에서 개인적으로 눈길을 끄는 대목은 그녀의 목표입니다. 오엽주는 졸업을 한 후 외국으로 가서 미용 기술을 더 배우고 싶고, 그런 후에 미용실을 개원하고 싶다는 개인적인 목표를 피력합니다. ‘꿈은 이루어진다’는 말처럼, 훗날 그녀는 화신백화점에서 개업하고,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며,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미용실을 개업합니다. 자신의 꿈과 이상을 있는 그대로 실현한 열정적인 인물입니다. 최초로 미용실을 개원한 사람, 최초로 쌍꺼풀을 수술받은 사람, 최초로 일본에 배우로 진출한 사람으로 기억되지만, 그 무엇보다도 자신의 삶을 열정적으로 개척한 사람인 거죠. 

미용인으로 열정적인 그녀의 삶을 볼 수 있는 다른 인터뷰 기사도 있습니다. 

동아일보1936년 1월6일자
동아일보1936년 1월6일자

“나는 미용사도 한 예술가라고 생각하고 자처합니다. 왜 그러냐고요? 내가 언제든지 미용을 하려고 얼굴을 만질 때는 마치 조각가나 화가가 이로부터 무슨 역작을 하나 완성하려고 성심성의를 다하는 것과 같은 그 심경으로 나도 얼굴을 만지면서 내가 생각하는 대로 곱게 되냐 안 되냐 하는 초조한 생각을 가지고 있을 때, 생각대로 된다면 조각가가 이상의 조작을 완성해 놓고 기뻐하는 기쁨이나 조금도 다름이 없는 것입니다.” 

동아일보 1936년 1월 6일 자 내용입니다. 자신의 일에 대해서 최선을 다하고 즐기는 마음가짐이 있었기에 당시 시대적인 고정관념을 타파하고 자신의 삶을 개척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요. 최초의 미용실 개업은 오엽주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조선일보 1932년 1월 11일 자에는 심명숙이라는 미용인이 중앙미용원을 만들었다는 기사가 있습니다. 

조선일보 1931년 1월11일자
조선일보 1931년 1월11일자

심명숙 여사가 시대의 진화와 문명의 추진에 따라 관철동에 중앙미용원을 신설하고 설비를 완비해서 신년 백두부터 개업했다는 내용입니다. 오엽주와 마찬가지로 경성미용학교 출신인데요. 이 내용에 의하면, 한국인 최초 미용실을 개업한 사람은 심명숙이 됩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미용실을 개업한 인물이 심명숙이든, 오엽주이든 간에 중요한 것은 시대를 앞서가는 선구자적인 역할을 한 미용인이 있었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습니다. 오엽주의 인터뷰 내용처럼 자신의 일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실천하는 용기, 미용인으로서의 삶을 되돌아보게 하고 새로운 꿈을 가지게 합니다. 

헤어 칼럼니스트 

심상희

 

<참고자료>

김소연. 미치지도 죽지도 않았다. 파란만장, 근대 여성의 삶을 바꾼 공간. 효형출판. 2019.

오엽주(吳葉舟). https://m.etoday.co.kr/view.php?idxno=1507309 

파마미인 오엽주. http://contents.history.go.kr/front/km/print.do?levelId=km_009_0090_0020_0020&whereStr=

최초로 쌍꺼풀 수술을 받은 한국 여성, 오엽주. https://www.joongang.co.kr/article/4555760#home.

한국 최초 파마.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3385402&cid=62045&categoryId=62045.

한국 최초 미장원.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3385324&cid=62045&categoryId=62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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