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상희 칼럼] 제29화, 미인박명(美人薄命)과 미인의 상징 금발
[심상희 칼럼] 제29화, 미인박명(美人薄命)과 미인의 상징 금발
  • 이현주 기자
  • 승인 2023.11.08 17: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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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인박명(美人薄命) 또는 가인박명(佳人薄命)이란 말을 한 번쯤 들어보셨을 텐데요. 미인박명과 가인박명에 담긴 의미는 미인의 삶은 불행하거나 병약해서 요절하는 일이 많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얼굴이 예쁜 여인은 팔자가 사나운 경우가 많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이 말에 ‘맞아!’라고 공감하실 수 있는데요. 그렇다면 외모가 못생기고 추하면 삶이 행복하고 건강한 가운데 장수하고, 그녀의 인생은 행운과 행복의 삶 그 자체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주변을 둘러보면 이 말이 참 공허하고 무의미하다는 것을 금방 알아차릴 수 있을 거예요. 만약 이 말이 진실이라면 외모에 신경을 쓴다는 것은 불행하고 단명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말이 되어 버리게 됩니다.

사림이라면 누구나 아름다워지기를 원하는데요. 죽을 때까지 이쁘고 싶은 것이 여인의 마음입니다. 아름다움에 대한 추구는 누구나 가지고 있는 공통된 마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상식적으로 미인이란 이유로 오래 살 수 없다는 건 말이 안 되지 않나요? 게다가 매력적인 용모를 유지하려고 식단 조절과 운동으로 자신을 가꾸고 건강관리까지 하는데 단명할 확률이 높을 이유가 없죠. 오히려 그 반대라면 납득할 수 있을 겁니다.

그렇다면 왜 미인은 오래 살 수 없는 운명이란 말이 생겨났을까요? 조금만 생각해 봐도 앞뒤가 안 맞고 모순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말이죠. 그리고 미인에 대한 반대 단어 추녀라는 말이 있는데, 왜 추녀에 대한 사자성어는 딱히 없을까요? 그만큼 우리들의 관심사는 미녀이지 추녀는 아니라는 겁니다. 그렇다면 왜 이런 사자성어가 생겨난 것일까요? 

이솝우화 중에 ‘여우와 신포도’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날 길을 지나가던 여우가 포도나무에 높이 달린 맛있는 포도가 먹고 싶었는데요. 아무리 노력해도 못 먹게 되자 포기하면서 ‘그 포도는 분명 맛이 없고 신맛 나는 볼품없는 포도일 거야! 그래서 난 안 먹을 거야’라고 말을 하면서 가던 길을 간다는 내용입니다. 먹어보지도 않고 처음에는 맛있어서 먹으려고 했던 그 포도를 이제는 맛없고 볼품없는 포도로 단정을 합니다. ‘여우와 신포도’의 숨은 뜻은 ‘사람들은 타인의 노력과 성공에 대해 하찮고 사소한 것으로 평가절하하는 습성이 있다’는 교훈을 담고 있는 이야기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사람들은 타인의 성공에 대해서 시샘하는 마음으로 부정적이고 무엇인가 잘못되기를 바라는 성향이 있다는 것입니다. 축하해주고 같이 즐거워하는 것이 아니라 질투하고 무엇인가 하나는 꼭 잘못된 것이 있기를 바란다는 이중적인 인간의 마음 상태를 표현한 우화입니다.

이처럼 못된 심포가 발동해서 아름다운 여성은 오래 못 살고 삶이 박복하기를 바란 것이죠. 재미있는 점은 미인을 시기 질투하는 마음은 비단 동양만의 정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동양은 아름다운 여인의 머리카락의 색이 검은색인데요. 서양의 아름다운 머리카락은 금발입니다. 금발이 되는 이유에 대해서는 다양한 이론들이 있는데요. 머리카락의 모낭에 존재하는 멜라닌 색소의 함량이 적은 경우 머리카락은 금색이나 노란색 계열의 밝은색을 띄게 된다고 합니다. 이런 머리카락을 금발(金髮)이라고 하는데요. 영어로는 ‘블론드(Blonde)’라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금발이 너무해」라는 제목으로 개봉된 영화가 있습니다. 원제목은 ‘리갈리 블런드(Legally Blonde)’인데요. 직역하면 ‘법적으로 금발’이라는 의미로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되는 제목인데요. 그 안에 담긴 내용을 들여다보면 ‘금발 머리의 아름다운 변호사’라는 제목입니다. 코미디 영화로 대학에서 패션을 전공한 미녀 주인공 엘 우즈(Reese Witherspoon 역)가 남자친구의 마음을 되찾기 위해 하버드 로스쿨에 진학하고 변호사로 활약하는 줄거리입니다. 내용을 간단히 요약하면 감히 금발의 미녀인데 그녀의 직업이 변호사라니 세상에 말도 안 된다는 내용입니다. 금발의 미녀는 변호사가 될 수 없을 만큼 멍청해야 한다는 의미를 해학적으로 비꼬아서 만든 영화입니다.

이처럼 서양 사회에서 금발은 아름다운 여성이라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섬섬옥수(纖纖玉手)’가 가냘프고 고운 여자의 손을 이르는 말로 미인을 뜻하는 것처럼요. 

금발 미녀를 다룬 또 다른 영화에서도 비슷한 맥락을 이어갑니다. 「신사는 금발을 좋아해(Gentlemen Prefer Blondes)」라는 뮤지컬 코미디 영화가 있는데요. 전 세계적으로 너무나 유명해서 누구나 다 아는 영화 배우, 마릴린 먼로(Norma Jeane Mortenson)가 주인공 로렐라이로 출연한 영화입니다. 여기서 그녀의 머리카락은 금발인데요. 이 영화에서도 금발 머리의 미녀는 멍청하다는 설정을 깔고 있습니다. 동양에서는 미인은 생명줄이 짧아서 요절해야 한다는 말처럼 서양에서는 금발의 미모를 갖춘 미인은 멍청하거나 모자란 푼수이어야 한다는 이상한 심포를 공유하고 있는 거죠.

머리카락은 아무런 의미를 담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의 심리적인 상태에 따라 좋은 쪽으로도 혹은 나쁜 쪽으로 자신들의 이익을 극대화하는데 활용하는 것을 볼 수 있었는데요. 모발은 우리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 어떤 해가 되는 죄를 저지르지도 않는 소중한 존재일 뿐입니다.

헤어 칼럼니스트 심상희

<참고 자료>

[알쏭달쏭+] 금발 여성은 멍청하다? IQ 비교해보니. https://www.google.co.kr/amp/s/m.nownews.seoul.co.kr/amp/20160323601013

금발이 너무해. https://namu.wiki/w/%EA%B8%88%EB%B0%9C%EC%9D%B4%20%EB%84%88%EB%AC%B4%ED%95%B4

머리카락/금색. https://namu.wiki/w/%EB%A8%B8%EB%A6%AC%EC%B9%B4%EB%9D%BD/%EA%B8%88%EC%83%89

신사는 금발을 좋아한다. https://namu.wiki/w/%EC%8B%A0%EC%82%AC%EB%8A%94%20%EA%B8%88%EB%B0%9C%EC%9D%84%20%EC%A2%8B%EC%95%84%ED%95%9C%EB%8B%A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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