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상희 칼럼]제 26화, 머리카락이 아름다우면 마음도 아름답다.
[심상희 칼럼]제 26화, 머리카락이 아름다우면 마음도 아름답다.
  • 이현주 기자
  • 승인 2023.09.05 16: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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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카락에 생기가 흐르고 풍성하면서 긴 머리 스타일을 하고 있는 여성의 이미지는 드라마, 영화, 광고 등 대중매체에서 아름다운 여성을 묘사하는데 사용됩니다. 그래서 ‘미인(美人)’이라고 하면 단발머리보다는 긴 머리스타일을 떠올리게 됩니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미인의 기준 중의 하나로서 아름답고 생기있는 모발이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거죠.

다양한 광고에서 미인들은 모두 긴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습니다. 파란 바다와 하늘을 배경으로 한 음료 광고에 등장하는 모델은 건강한 긴 머리를 바람에 휘날리며 음료수의 청량한 이미지를 표현하고 있는데요. ‘그녀의 자전거가 내 가슴 속으로 들어왔다’는 문구로 유명한 의류 광고에서도 자전거를 타고 등장하는 모델 역시 긴 머리의 아름다운 머리칼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처럼 아름답고 건강한 머리카락은 미인의 상징으로 사용되고 있는데요. 그렇다면 반대로 푸석거리고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가진 여성은 추녀(醜女)를 의미하는 것일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네 맞습니다. 수많은 문학 작품 속에서 머리카락이 푸석거리고 단정하지 못하면 외모가 못난 사람을 의미합니다. 단순히 외모만 못난 것이 아니라 한 걸음 더 나아가 마음마저 나쁜 사람으로 묘사됩니다. 예를 들면 머리카락이 짧고 뻣뻣하거나 머리숱이 적거나 빠진 경우, 또는 단정하지 못한 머리카락은 여성의 외모와 내면의 부정적인 모습을 의미합니다.

조선 후기 소설 중에 『박씨전』이 있는데요. 주인공 박씨는 타고난 업보를 소멸한 뒤에는 미인으로 변신하게 됩니다. 저주받은 시절 박씨의 추한 외모를 표현하는 대목에서 머리카락에 관한 내용이 있습니다.

‘그 용모를 보니 형용 흉측ᄒᆞ여 보기를 염녜론지라. 얼기는 고셕갓고 불근 중에, 입과 코와 한데닷고, 눈은 달ᄑᆡᆼ이 구멍 갓고 치불거지고, 입은 크기가 두 쥬먹을 너허도 오히려 넉넉ᄒᆞ며, 이마는 믜독이 이마 갓고, 머리털은 ᄶᆞ르고 심히 부ᄒᆞ니, 그 형용이 ᄎᆞ마 보지 못할네라.’

이 글을 보면 세상에 이런 추녀가 있을까 싶은데요. 눈도 작아서 달팽이 같고, 입은 두 주먹이 들어갈 만큼 크고, 머리카락은 짧고 심히 부해서 그 모습을 차마 볼 수가 없다고 합니다. 짧고, 정돈되지 않은 부한 머리카락이 못생긴 외모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장화홍련전』의 탐욕스러운 악녀 계모 허씨의 외모를 표현하는데서도 머리카락에 관한 내용이 등장합니다.

머리털은 돼지털 같고 키는 장승만 한고 소리는 이리 소리같고 허리는 두 아름이나 되는 것이 게다가 곰배팔이요. 수중다리에 쌍언청이를 겸하였고 그 주둥이를 썰어내면 열 사발은 되고 얽기는 콩멍석 같으니..

허씨의 머리카락은 돼지털처럼 뻣뻣하면서 짧은 것을 알 수 있는데요. 계모의 부정적인 이미지와 외모를 설명하는데, 머리카락이 한몫하고 있습니다. 반대로, 비단처럼 부드럽고 가지런한 긴 머리카락은 옛날 미인의 조건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심청전』에서도 악역을 담당하는 뺑덕어미 역시 거친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습니다.

말춍갓튼 머리털리 ᄒᆞ날을 갈의치고 되박 이마 홰 눈셥의 우먹 눈 쥬먹코요 메쥬볼 숑곳턱의 쎨에이 드문드문 입은 큰 궤문 열어 논 듯 ᄒᆞ고.

움푹 들어간 눈에 주먹코를 가진 뺑덕어미는 말총같이 뻣뻣하고 하늘을 향해 삐죽하게 뻗어 있는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습니다. 뺑덕어미는 외모만 추한 것이 아니라 심봉사를 등쳐먹는 마음도 추한 인물입니다. 못난 모습과 마음가짐을 표현하는데 어김없이 매력적이지 못한 머리카락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뺑덕어미와는 반대로 효성이 지극하고 마음씨 고운 심청이는 아름다운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는 절세가인입니다.

화공이 분부 듣고 족자 포쇄(曝曬)하야 유탄(柳炭)을 손에 들고 심소저를 바라본 후, 이리저리 그린 후에 오색 화필을 좌르륵 펼쳐, 각색 단청 벌려 놓고 난초같이 푸른 머리 광채가 찬란하고, 백옥같은 수심 얼굴 눈물흔적 완연하고, 가는 머리 고운 수족 분명한 심 소저라.

심청이는 난초같이 푸른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는데요. 어찌나 머리카락이 아름다운지 광채가 찬란하기까지 합니다. 게다가 마음만 이쁜 것이 아니라 피부 또한 백옥같이 하얗고 가녀린 얼굴에 수족까지 곱다고 합니다. 머리카락이 이쁘면 외모만 아름다운 것에서 끝나지 않고, 마음까지 이쁜 것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심청전』, 『박씨전』, 『장화홍련전』 등에서 알 수 있듯이, 머리카락이 아름답지 못하고 단정하지 못하면 외모가 볼품없는 사람이 됩니다. 그리고 단순하게 외모가 못난 것에서 그치지 않고 심성까지 나쁜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는데요. 이처럼 악녀(惡女)의 마음을 우회적으로 나타내는데 머리카락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반대로 마음씨가 곱고 착하며, 외모가 뛰어난 여인들은 광채가 나며, 건강하고 아름다운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습니다.

문학 작품속의 이러한 표현들을 잘못 이해하면 외모지상주의로 생각될 수 있는데요. 표현에 담긴 핵심은 건강하고 단정한 헤어 스타일의 중요성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외모를 단정히 한다’는 것은 그만큼 자신을 돌보고 가꾼다는 의미로, 자신을 소중히 생각한다는 것이니까요.

다시 말하자면 ‘건강한 모발’은 건강한 마음과 신체의 결과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건강한 모발을 유지하기 위해서 관리하는 노력은 단순히 외모의 아름다움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내면의 아름다움을 가꾸는 일도 될 수 있는 거죠. 나무와 꽃처럼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듯이 우리의 건강한 신체와 마음이 꽃처럼 피어나는 곳이 있다면, 그곳은 아마도 머리카락이 아닐까요?

 

헤어 칼럼니스트 심상희 

 

<참고자료>

김기현 역주. 한국고전문학전집 15 「박씨전, 임장군, 배시황전」.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소. 1995.

김진영 외, 심청전전집. 박이정. 1997.

진규태. 고전문학대계 「장화홍련전」. 명문당. 1991.

진규태.한국고전문학대계 「심청전」. 명문당, 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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