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상희 칼럼]제 25화, 삼손과 데릴라 그리고 머리카락
[심상희 칼럼]제 25화, 삼손과 데릴라 그리고 머리카락
  • 이현주 기자
  • 승인 2023.08.18 18: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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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카락은 있으나 없으나 마나 한 것으로 우리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머리카락처럼 수많은 의미를 포함하고 있는 게 또 있을까 싶기도 합니다. 머리카락은 사람과 사람들 사이의 의미를 넘어서 신(神)과 인간의 약속의 증표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성경 속에는 수많은 인물들이 등장하는데요. 그중 삼손에 관한 이야기는 한 번쯤 들어봤을 것입니다. 

삼손은 신의 은총을 입어서 그 누구도 당해낼 수 없는 힘을 가지고 태어납니다. 그래서 적대 관계에 있는 브레셋에서는 삼손을 없앨 방도와 힘의 비밀을 알아내기 위해 미인계를 사용합니다. 브레셋의 첩자 데릴라는 온갖 노력 끝에 삼손의 힘의 근원이 머리카락에 있다는 비밀을 알아내는데 성공합니다. 삼손은 잠든 사이 몰래 삭발을 당하게 되고, 힘을 잃게 됩니다. 결국, 블레셋 사람들에게 잡혀서 두 눈이 뽑히고 옥중에서 맷돌을 돌리는 포로가 됩니다. 마지막에는 블레셋 사람들에게 복수를 하지만 자신도 생명을 잃게 되는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합니다.

삼손의 이야기에서 머리카락은 신과 약속의 증표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머리카락가 사라지면서 힘을 잃게 되고, 다시 머리카락이 자라면서 힘을 회복하게 됩니다. 머리카락이 약속의 매개물인 거죠. 신과 맺은 약속의 증표라면 왠지 우리 몸에서는 없어서는 안 되는 부분들 예를 들면 심장이나, 두뇌와 같이 생명에 치명적인 영향을 주는 신체가 약속의 매개체 역할을 감당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도 어찌 보면 있으나 마나 한 머리카락이 약속의 징표로 사용된다니 놀라울 따름입니다. 

머리카락이 신과 약속의 매개체와 증거로 사용된다는 것은 단순히 물질적인 의미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머리카락에는 영혼이나 신명처럼 보이지 않는 의미가 더 크게 담겨 있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이 밖에도 성경의 다양한 이야기 속에서 머리카락은 헌신과 정성, 그리고 서약의 증거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삼손의 경우에서는 머리카락이 외부로 드러나는 형태로 신에 대한 경외와 신앙심이 표현되고 있는데요. 때로는 머리카락을 드러내지 않고 감추는 것이 신에 대한 경배와 신앙심을 표현하는 방식이 됩니다. 인간의 심리는 너무나도 소중한 대상이 있는 경우, 그 소중한 대상을 귀하게 여기고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노력합니다. 반대로 역설적인 방법으로 그 대상을 다가가서는 안되는 부정적인 범주로 묶어놓고, 다가가서는 안되는 대상으로 근접하지 못하도록 만들어 버리기도 합니다. 심리학의 선구자인 프로이드(Sigmund Freud)는 이런 인간의 마음 작용을 토템(Totem)과 타부(Taboo)로 설명하는데요. 신성한 것과 불경한 것은 같은 마음의 작용에서 나온다는 논리입니다. 

이처럼, 성격 속에서도 신성에 대한 예법으로 누군가는 머리카락을 드러내는 것이 예법이 되고, 누군가에게는 드러내지 않는 것이 예법으로 다르게 구분되어 있습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남성은 머리카락을 드러내는 것으로, 여성은 머리카락을 감추는 것으로 신에 대한 경배와 신앙심을 표현하는 차이가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기도와 예언을 하는 이들에 대한 설명에 따르면, 성경에는 남자가 머리에 무엇을 쓰고 기도나 예언을 하는 자는 그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반대로 여자는 머리에 쓴 것을 벗고 기도나 예언을 하는 자는 그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으로 만약 머리를 가리지 않고 싶으면, 깎거나 밀라고 되어 있습니다. 

성경의 이 구절들은 현대 생활방식에 알게 모르게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천주교에서는 예배를 드릴 때 여성들이 미사포를 쓰는데요. 이러한 내용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머리카락을 감추는 용도로 중동국가에서는 히잡과 차도르가 있는데요. 이런 관습의 배경도 성경의 내용과 무관하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조선 시대에 장옷과 쓰개치마가 있었는데요. 둘 다 머리카락을 가리는 의상으로 여성을 탄압하는 의미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처음의 의도는 이런 부정적인 의미로 여성을 차별하기 위한 용도가 아니라 일상생활에 필요하고 신성한 의미에 그 뿌리를 두고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유럽국가에서는 장례식에서 여성들은 머리카락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 예법으로 자리하고 있는데요. 이 또한 성경의 영향일 수도 있습니다. 엘리자베스 여왕의 장례식에서 조문하는 여성들은 다양한 모자를 착용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모자라고 하기 힘든 액세서리(accessory)를 머리에 쓰고 있는데요. 영국을 비롯한 유럽국가에서 이 같은 모자는 페시네이터(fascinator)하고 불립니다. 이러한 모자를 착용하는 이유는 여성이 장례식에서는 머리카락을 보이면 안 되는 문화가 있기 때문입니다. 장례식에서 머리카락을 감추기 위해 사용된 모자가 패션 아이템으로 활용되고 페시네이터(fascinator)라는 신조어로 만들어질 만큼 유행될지 누가 예상할 수 있었을까요? 우리나라에서 장례식에서 모자를 쓰고 있는 것은 실례가 되지만 서양에서는 모자를 쓰는 것이 예법으로 자리 잡을지 누가 예상할 수 있었을까요?

한편으로는 머리카락을 아름답게 꾸미고 가꾸기 위해서 염색, 퍼머, 헤어 관리 제품의 산업 발전을 가져오고, 다른 한편으로는 머리카락을 감추는 방편으로 모자와 관련된 패션 아이템의 발전을 가져오고 있습니다. 때로는 머리카락을 드러내는 것이 때로는 머리카락을 감추는 것이 존경과 마음을 다하는 정성의 모습이 된다니 아이러니 한 일입니다. 

이처럼 상반된 의미를 가지고 있으면서, 이래도 저래도 소중하고 귀하게 여김을 받는 대상이 머리카락 말고 또 있을까 싶습니다. 

 

헤어 칼럼니스트 심상희

 

<참고 자료>

『성경』

지그문트 프로이트. 프로이트 토템과 터부(원당희 역). 미래지식. 2021.

머리카락 : 머리카락을 미는 것은 슬픔의 표시. https://maria.catholic.or.kr/bible/bbs/bbs_view.asp?id=9462&ref=43&menu=47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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