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상희 칼럼] 제 33화, 머리카락은 풍성해야 한다
[심상희 칼럼] 제 33화, 머리카락은 풍성해야 한다
  • 이현주 기자
  • 승인 2024.02.21 19: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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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머리카락은 풍성한 게 좋게 보이는 걸까요? 누구는 머리숱이 너무 많아서 불편하다고 하고 혹자는 머리숱이 없어서 불편하다고 하겠지만 머리숱이 많으면 솎아낼 수는 있지만, 머리카락이 부족해서 심는 건 어려운 일입니다. 단순하게 생각해보면 머리카락이 없는 것보다는 풍성한 것이 좋다는 생각이 듭니다. 

머리숱이 풍성해야 좋다는 생각은 요즘의 생각만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풍성한 머리카락에 대한 선호는 동양만의 특색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머리카락이 풍성한 것이 좋은 모습으로 여겨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아마도 건강하고 생존에 유리하다는 표식이 되기 때문이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제목은 생각이 나지 않지만, 유대인 학살을 다루었던 영화에서 건강한 사람은 노동을 시키고 병약한 사람들은 가스실에 보내는 내용이 있었는데요. 그때 건강하다는 표시를 나타내려고 일부러 상처를 내서 피를 나오게 해서 볼에 바르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 이유는 볼에 붉은색이 돌면 건강하다는 증거가 되고, 가스실에 가는 것을 모면할 수 있게 됩니다. 

우리 몸 어디 하나 귀하지 않은 부분이 없지만, 생명과 직결되는 면에서는 혈액보다 중요한 게 없습니다. 가족관계와 친밀한 사이를 표현하는데 혈육(血肉)이라는 말을 쓰는 것을 보더라도 혈(血)에 담긴 의미를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중요한 혈액을 온몸으로 전달하는데 심장보다 큰 역할을 하는 것도 없습니다. 동양에서는 마음이 심장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반면에 서양은 머리에 마음이 담겨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이런 생각의 차이가 머리카락을 바라보는 관점에서 차이가 납니다. 동양에서는 머리카락을 혈지여(血之餘)라고 바라봅니다. 동양과 서양의 생각 차이인데요. 동양에서는 혈액의 여분으로 머리카락이 만들어진다고 설명을 합니다. 그래서 빈혈이나 건강한 상태가 아니면 머리카락이 빠지고 모발 상태가 나빠지게 된다고 봅니다. 다시 말하자면, 머리카락이 풍성하다는 건 건강하다는 표현이 됩니다. 거꾸로 말하자면 건강하지 못하면 머리숱이 빠지거나 탈모가 생기는 거죠. 그런데 육체적인 건강뿐만 아니라 마음의 건강이 힘들고 나빠지게 되면 원형탈모도 생깁니다. 마음이 심장에 있고, 마음이 다치면 심장이 다치는 것을 의미해서, 결국 심장과 관련 있는 혈액이 건강하지 못해서 탈모로 이어진다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스트레스가 만병의 근원이라고 하는 것처럼, 모발의 건강에도 심리적인 요인이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이죠. 

서양에서는 18~19세기에 모자와 가발을 쓰는 것이 유행합니다. 15세기 말 유럽에 처음 나타난 매독은 16세기를 거치면서 유럽인들에게 공포의 대상이 됩니다. 18∼19세기 한때는 유럽 인구의 15%가 매독 환자였다고 합니다. 성병은 탈모를 유발하는데요. 대표적으로 탈모 유발 성병이 매독입니다. 머리카락이 빠지자 탈모를 감추기 위해서 가발과 모자 관련 산업과 문화가 자연스럽게 발달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때 서양 사회는 프랑스 혁명과 산업혁명으로 정치적, 경제적으로 지배적인 위치를 확립하는 부르주아(bourgeois) 계급이 등장하게 되는데요. 자신의 부를 나타내는 증표로 가발과 모자가 기능성보다는 화려하고 커지는 형태로 발전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런 모습이 우리나라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납니다. 바로 ‘가체’입니다. 가체는 머리를 장식하는 일종의 가발로 볼 수 있습니다. 가체는 우리나라의 손재주가 담긴 전통 미용 공예예술 작품인데요. 신라 시대에는 ‘미체(美髢)’라고 해서 중국에서 수입해 갈 정도였다고 합니다. 

자신의 머리를 땋아서 머리 위에 둥글게 말아 올리거나 이외에도 다양한 모습을 연출했습니다. 신윤복의 단오풍경에서는 가체를 하고 있는 여인의 모습과 가체를 만들기 위해 긴 머리를 단장하고 있는 여인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림. 신윤복 단오풍정(端午風情)
그림. 신윤복 단오풍정(端午風情)

그런데 머리카락이 땋아 올릴 만큼 풍성하거나 길지 않은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머리카락으로 꼬아놓은 더미를 이용해서 머리 장식에 사용했습니다. 다른 사람의 머리를 땋아서 놓은 일종의 꾸러미 형태를 ‘달내’라고 합니다. 그리고 가체에 금, 은, 옥 같이 귀금속 장식을 사용해서 자신의 부와 권력을 나타내는 형태로 유행을 하게 됩니다. 

가체가 발전하게 된 다양한 요인 중의 하나가 모발의 담긴 상징성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풍성한 머리카락이 아름다움과 건강의 상징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여기에 기본적으로는 풍성한 머리란 건강한 사람이란 의미에서 자랑하고 싶고 뽐내고 싶은 인간의 욕망이 결합해서 값비싼 비용을 지불해서라도 자신을 드러내고 싶은 욕망과 결합된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처럼 풍성하고 건강한 모발에는 건강함과 경제적인 여유로움이 담겨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마음에 드는 헤어 스타일을 하게 되면 자신감도 올라가고 기분도 상쾌해지는데요. 이처럼 머리카락은 우리의 삶에 많은 영향을 주는 귀중한 존재입니다. 

헤어 칼럼니스트 심상희 박사

 

<참고 자료>

간송미술관. 단오풍정. http://kansong.org/collection/danopungjeong/

동의보감(東醫寶鑑)

문학비평용어사전. 부르주아.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1530131&cid=60657&categoryId=60657

전동호. 숨겨진 진실: 18세기 영국 남성 초상화 속에 나타난 가발의 의미. 서양미술사학회 논문집 25. 78 – 97. 2006.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가체(加髢).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003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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